[조현용의 우리말로 깨닫다]삼왕(三王) 이야기

작성자 : 관리자 날짜 : 2023/07/01 11:22

삼왕(三王) 이야기

‘왕이 세 명 있었다’라고 하면 당연히 남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왕은 여자인 왕입니다. 제가 굳이 여왕이라는 표현을 피하는 것이 여왕이 특별한 것이 아님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보면 신라 시대에는 세 명의 여자인 왕이 있었습니다. 선덕왕, 진덕왕, 진성왕이 그들입니다. 세 왕의 칭호에는 원래 여왕이라는 말은 붙지 않습니다. 그냥 왕이었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이 굳이 구별을 지으려고 여왕이라고 했던 것뿐입니다. 

신라 시대에 여자인 왕이 셋이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혹시 한 명이었다면 우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셋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당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덕왕과 진덕왕, 진성왕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을까요? 여자이기 때문에 후대의 역사가들이 편견을 담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왕을 성별에 따라 구별하였다면, 남왕, 여왕이라고 하였어야 하지만 굳이 여왕만 ‘여’를 붙여 구별하는 것은 사회를 반영합니다. 이런 것을 언어학에서는 유표라고 합니다. 아직도 이런 현상은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여교수라는 말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선덕왕은 신라의 제27대 왕입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왕입니다. 선덕왕에 대해서 다양한 평가가 있습니다만, 황룡사 9층 목탑이나 분황사를 짓는 등 신라의 대표적인 건축물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다음 왕인 진덕왕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으로 봐서 여자인 왕의 평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당태종이 선덕왕을 여자라고 하여, 사신에게 폐위하기를 이야기하나 결과적으로는 다음 왕 역시 여자가 왕이 되는 겁니다. 여자인 선덕왕이 문제가 있었다면 또 여자에게 왕위를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진덕왕은 삼국사기에 보면 키가 7척으로 나옵니다. 그야말로 당찬 왕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왕위에 올랐지만 김유신 등을 시켜서 백제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끕니다. 무엇보다도 진덕왕은 신라의 왕 중에서 성골의 마지막 왕입니다. 다음 왕은 김춘추, 즉 태종무열왕으로 이때부터는 진골이 왕이 됩니다. 진덕왕 시절에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춘추와 김유신이 활약하던 시기는 선덕왕과 진덕왕 시절인 겁니다.

세 번째 여왕인 진성왕도 명민하고 체격이 장부 같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진성왕은 역사책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각간 위홍과 염문이 있었고, 젊은 관료와도 염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이라는 위치를 생각해 볼 때, 여자가 아니라면 이러한 이야기가 중요하게 다루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였기 때문에 왕이었음에도 차별적으로 기술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진성왕 시절에 향가를 집대성한 삼대목이 만들어졌음은 주목할 만합니다. 다만 삼대목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음은 무척이나 아쉬운 일입니다. 국어사, 국문학사가 완전히 달라질 책입니다. 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진성왕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여전히 삼대목을 찾으러 다닙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세 왕은 모두 여자였습니다. 어쩌면 세 왕이 신라에서 나온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신라의 첫 임금인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은 박혁거세와 함께 성인으로 불렸습니다. 원화는 선덕왕이 등극하기 전에 이미 존재하였던 신라의 여성 리더 조직입니다. 저는 신라에서 여자인 왕이 나온 곳은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도 굳이 이름에 여왕을 붙여 부르는 것은 폄하하는 태도라고 봅니다. 선덕왕, 진덕왕, 진성왕으로 원래 이름을 불러야 할 겁니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iiejhy@khu.ac.kr